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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우관
덕우관은 이모봉 꼭대기에 위치하여 있으며 부지가 1600m2, 원조 연우연간(1314-1320년)에 건설되었고 이모진군(二茅真君) 모고(茅固)를 전문 제사하다가 항일전쟁 기간에 일본군에 의해 불태워 없어졌다. 청조 옹정, 건륭 연간(1723-1795년)에 전진파(全真派) 도사 심일청(沈一清)이 이곳 도교사원을 다시 건설하였다. 1958년, 덕우관에 겨우 남은 3개 낡은 건물이 철거되어 다른 용도로 쓰여졌다. 덕우관은 전진파의 건도(乾道)를 전승하였다.

인우관
인우관은 삼모봉 꼭대기에 위치하여 있고 부지가 1400m2이며, 주체는 전통 건축과 종교 풍격을 융합하여 유적지를 보호하는 기초에서 종교 및 관광 기능을 만족하였다. 인우관은 원대 연우연간(1314-1320년)에 건설되었고 소모군(小茅君) 모충(茅衷)을 전문 제사하다가 항일전쟁 기간에 일본군에 의해 불태워 없어졌다. 청조 옹정, 건륭 연간(1723-1795년)에 전진파(全真派) 도사 심일청(沈一清)이 이곳 도교사원을 다시 건설하였다. 인우관은 전진파의 곤도(坤道)를 전승하였다.



비상도
비상도는 관광지구 판산도로의 오른쪽에 위치하여 있으며 이름은 <도덕경>의 제1장 ‘도가도, 비상도(道可道,非常道)’에서 유래되었다. ‘비상도’의 전체 길이는 1.6킬로미터이고 전체 과정에 화존정, 포박정, 본초정, 은거정 등 4곳의 휴식 정자가 있다.




호운석
전하는 말에 의하면 대모군(大茅君) 모영(茅盈)이 천리를 마다하지 않고 섬서 함양에서 구곡산에 와서 약을 캐고 단약을 만들어 사람들의 병을 고치면서 도를 닦고 선행을 하였다고 한다. 그때 당시 모산은 바람이 많이 불고 비가 적게 내려 주변의 100리 지역의 하늘에는 모두 연기와 모래가 날려 백성들은 길을 걸을때 두건을 쓰고 다녀도 집에 돌아가 보면 입안에 모래와 자갈들이 가득했다. 이는 현지 백성들의 일상생활 및 농사일에 큰 불편을 가져왔다. 하지만 산에 아무리 큰 바람이 불고 길이 아무리 가파로와도 모영은 매일 아침 일찍 나가고 저녁 늦게 들어오면서 산림속에서 초약을 찾아 다녔다. 지치거나 배고플때면 이곳 돌에 기대어 건조 식품과 산속의 샘물로 허기를 달랬다. 이상하게도 그가 이 돌의 어느 방향에 서있기만 하면 산간에서 사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을수 있었고, 시간이 오래 지나자 모산의 바람이 그렇게 크지 않았다. 모영이 수행하여 정과를 이룩하고 신선이 된후부터 모산은 예전과 같은 광풍이 더이상 불지 않았다. 사람들은 성인의 공덕에 감사하여 이 돌을 ‘호운석’이라 불렀다.




기판석
모산 주변의 명소 덕우관 유적지의 서남 방향에서 멀지 않은 곳에 평평하고 바둑판처럼 생긴 천연석판이 있는데 사람들은 이를 기판석이라 부른다.



백학천
샘물은 사람들에게 맑고 깨끗하고 촉촉하고 달콤한 느낌을 준다. 청순하고 요염하지 않으며 노련하지만 굼뜨지 않고 하늘과 땅의 정화를 모으고 해와 달의 빛을 들이마신 정령이다!



뇌벽지
모산 주변 명소에 2개의 뇌벽지가 있는데 한곳의 물은 유황맛이 나고 다른 한곳의 물은 달콤한 샘물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원래 삼모봉 꼭대기에 마실수 있는 물이 없었는데 천둥이 치면서 못 하나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유황맛이 있어 마실수 없었다. 후에 천둥이 그 옆에 또 다른 못 하나를 만들었는데 그안의 물은 꿀처럼 달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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